유병자·간편보험 고지의무, 어디까지?
"3개월 기간 밖 소견, 알릴의무 없다"
간편심사로 가입한 유병자보험에서 심방세동 수술비를 청구하자 보험사가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명시된 질문 기간을 지난 진료 내역은 고지하지 않았더라도 보험사가 일방적으로 보험계약을 해지하거나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1심과 항소심 법원 모두 보험사의 채무부존재확인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보험사의 부당한 면책 주장에 제동을 걸고 약관 해석의 기준을 명확히 한 이번 항소심 판결의 의미와 주요 쟁점을 보험소송닷컴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가 자세히 해설해 드립니다.
사건 개요
보험모집인으로 일하던 김 모 씨(피고)는 2022년 9월 13일 모 대학병원에서 심방세동 등으로 진료를 받고 동결절제술(수술)을 하기로 입원 및 수술 계획을 잡았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하고도 6일이 경과한 2022년 12월 19일, 김 씨는 (주)케이비손해보험의 심장질환 관련 보험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보험은 이른바 '간편심사' 상품이었습니다. 약관은 상품의 주요 특징으로 유병력자 또는 연령제한 등으로 일반심사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운 피보험자를 대상으로 하며, 1종(초경증간편심사형)은 2종(일반심사형)보다 보험료가 할증돼 있다고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3·5·5 플랜, 즉 최근 3개월 이내 입원·수술·추가검사 필요 소견, 최근 5년 이내 질병·상해사고로 인한 입원 또는 수술, 최근 5년 이내 8대 질병 진단·입원·수술 여부만을 묻는 구조였습니다.
가입 당시 청약서의 '최근 3개월 이내에 입원, 수술, 추가검사 필요 소견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김 씨는 기간이 지났으므로 '아니오'라고 기재했습니다.
이후 2024년 1월 발작성 심방세동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해 전극도자절제술을 받은 김 씨는 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케이비손해보험은 김 씨가 과거 입원 및 수술 필요 소견을 고의로 숨겼다며 상법상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고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쟁점 정리
◗ 청약서 질문표에 명시된 '최근 3개월 이내' 기준을 단 며칠 경과해 받은 입원 및 수술 필요 소견이 고지해야 할 중요한 사항인지 여부
◗ 보험료가 할증된 유병자보험에서 질문표에 없는 과거 질병 내역까지 가입자가 스스로 고지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
◗ 수술이 예정된 상태에서 다수의 보험에 가입한 행위가 사기에 의한 계약 체결이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
보험계약자 측 주장
김 씨 측은 가입 당시 청약서 질문에 기재된 '최근 3개월'이라는 기준 기간을 지났기 때문에 사실대로 답변한 것일 뿐, 어떠한 허위 사실도 고지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수술 일정을 미룬 것 역시 수술 자체에 대한 두려움으로 개인적인 건강관리를 시도하려던 것이지 결코 부당하게 보험금을 탈 목적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해당 상품은 과거 질병이 있는 사람도 가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간편가입 상품이므로 질문표에서 묻지 않은 내용까지 알아서 고지할 이유는 없다고 항변했습니다.
보험사 주장
케이비손해보험은 김 씨가 약물치료 효과가 없어 입원 및 수술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청약서상 질문 기간인 3개월이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동종의 심장질환 보험에 가입했다고 반론을 폈습니다. 이는 명백히 고의로 고지의무를 위반한 것이며, 다수의 보험금을 부당하게 수령할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이므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어 무효이거나 사기에 의해 취소되어야 하므로 보험사면책이 타당하다고 맞섰습니다.
법원의 판단
광주지법 제3-2민사부(재판장 박희정 부장판사)는 케이비손해보험이 김 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 청구 소송의 항소심에서 케이비손해보험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마찬가지로 보험계약자 김 씨의 손을 들어줬다고 밝혔습니다.1)
1심은 입원 및 수술 필요 소견이 고지했어야 할 중요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설사 고지의무 대상이라 하더라도 보험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고의나 중대한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근거는 여섯 가지였습니다. 첫째, 이 보험은 간편보험이자 유병자보험으로, 보험사고 발생 위험이 높다고 볼 수 있는 사항만 남기고 통상적인 의료행위 관련 사항은 대폭 제외하는 대신 보험료를 상향한 상품이어서, 일반 보험계약의 고지의무 범위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답변일과 소견을 받은 날 사이가 3개월에서 불과 6일을 초과하지만, 그 사정만으로 허위 사실을 적극 고지했다거나 알릴 사항을 소극적으로 숨겼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셋째, 3·5·5 질문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과거 병력이나 진단 내역까지 고지의무를 부담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넷째, 보험사고 발생이 사실상 예정돼 있었다는 주장은 질문의 문언, 의사표시 해석의 일반원칙, 심방세동의 의학적 특성과 치료 방법에 비추어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다섯째, 수술을 미룬 경위에 관한 김 씨의 설명은 증세의 빈도와 정도, 진료 경과에 비추어 수긍하지 못할 바 아닙니다. 여섯째, 보험사가 의뢰한 손해사정법인은 "가입 전 고지의무 위반 사항 없는 것으로 확인됨"이라는 조사 결과를 통보했고, 다른 보험사들이 의뢰한 손해사정법인들도 동일한 결론을 냈습니다.
항소심은 1심 판단을 정당하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대법원 2024. 4. 16. 선고 2023다293620 판결의 취지를 인용하면서, 약관이 이 상품을 과거 병력이 있거나 연령제한으로 일반심사보험 가입이 어려운 경우에도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이라고 적극 소개했던 점, 그런 사정이 반영돼 할증된 보험료가 책정된 점, 그럼에도 질문 기간 이전의 소견까지 알리지 않으면 고지의무 위반으로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는 점을 별도로 안내했다고 볼 자료가 없는 점을 들어, 질문 기간 이전 치료 내역까지 고지할 의무가 있음을 알았다거나 중대한 과실로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 해설
간편심사 유병자보험과 관련하여 청약서 질문표의 기간을 근소하게 경과한 진료 기록을 이유로 보험사 면책을 주장하는 분쟁이 보험소송 실무상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보험사는 손해사정 과정에서 상법상 고지의무 범위를 임의로 넓게 해석하여 계약을 해지하려 시도하는 경향이 매우 짙습니다.
이러한 유사 사안에서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약관해석과 보험상품의 특수성입니다. 높은 위험을 인수하는 대가로 할증된 보험료를 받는 간편보험의 경우, 대법원 판례의 입장에 비추어 보더라도 보험사가 사전에 일정한 위험을 감수하고 질문 사항을 축소한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계약자가 청약서상 명시된 기간을 하루라도 경과했다면, 특별한 기망 행위가 없는 한 과거 질병 내역 미고지를 이유로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 없습니다.
분쟁을 대비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증거는 병원에서 발급받은 진단서, 진료기록부, 의무기록사본 등입니다. 주치의가 구체적으로 언제 입원이나 수술 필요 소견을 냈는지 날짜를 명확히 확인하여 보험 가입일과의 기간 차이를 입증해야 합니다. 또한 수술을 즉시 받지 않고 일정 기간 미루게 된 의학적 사유가 담긴 사고경위서, 그리고 할증된 보험료가 적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약관의 주요 내용 등을 꼼꼼히 준비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청구 및 소송 단계별 팁으로는, 먼저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부당한 면책 통보를 할 경우 즉시 청약서 사본과 의료 기록의 날짜를 대조하여 고지 대상이 아님을 강하게 주장해야 합니다. 보험사가 다수 보험 가입을 이유로 사기 무효를 내세우며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걸어오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질병의 진행 경과상 고의적인 보험사고 유발이 아니며 과거 병력과 현재 질환 간의 인과관계 부존재 등을 객관적인 의학 자료를 바탕으로 반박하는 대응 방향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유사한 분쟁은 사실관계와 약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1) 케이비손해보험의 대법원 상고 포기로 2심(항소심) 판결의 2026년 6월 26일 확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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