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간염 고지 후 간암 보험금 거절,
"보험사가 이미 안 병력, 고지의무 위반 해지 불가"
특히 보험사가 가입자의 과거 병력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거나 제출된 진료기록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추가 질문을 하지 않은 보험사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봤습니다.
이번 판결은 보험계약자의 알릴 의무와 보험사의 확인 의무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한 사례로, 억울하게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한 가입자들에게 중요한 권리 구제 기준이 될 전망입니다.
사건 개요
허 모 씨(원고)는 2016년 8월 디비손해보험(피고 보험사)과 암 진단 시 3,900만 원을 지급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 보험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후 2017년 9월경 허 씨는 병원에서 간세포암(간암) 진단을 받고 간절제술을 시행 받은 뒤, 피고 보험사에 암 진단비를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피고 보험사는 2017년 11월 허 씨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허 씨가 보험계약 체결 전인 2015년 12월경 병원에서 만성 B형 간염 및 간경화증 진단을 받고 B형 간염 치료제인 비리어드 30일분을 처방받았음에도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허 씨는 청약서의 '최근 5년 이내에 30일 이상 투약' 항목에는 '예'라고 표시했으나, 그 아래에 있는 진단명과 치료병원 등을 적는 세부 표는 빈칸으로 두었으며, 10대 질병(간경화증 포함) 진단 여부에는 '아니오'라고 표기한 상태였습니다. 피고 보험사는 이 기재 방식을 문제삼았습니다.
쟁점 정리
◗ 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위해 진단서에 기재된 '간경화증' 코드를 실제 앓고 있는 질병으로 보아 고지의무 위반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
◗ 청약서의 투약 사실 질문에 '예'라고 답했으나, 하단 세부 사항 표를 기재하지 않은 행위가 고지의무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
◗ 과거 계약 이력과 제출된 진료기록부 등을 통해 가입자의 질환을 알 수 있었던 보험사가 추가 확인을 하지 않은 경우, 보험사의 중과실이 인정되는지 여부
보험계약자 측 주장
허 씨 측은 계약 체결 전 진단서에 간경화증 코드가 부기된 것은 약제에 대한 의료보험 급여 혜택을 받기 위한 것이었고, 실제 확정된 병명은 만성 간질환(B형간염 바이러스 양성)이었다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따라서 10대 질병 관련 문항에 '아니오'로 표기한 데에 허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허 씨는 청약서에서 30일 이상 투약 사실 자체를 명확히 표시했고, 청약 당시 제출한 진료기록에 간질환 진단명이 기재되어 있었으며, 2005년경 같은 보험사와 체결한 이전 계약의 청약서에 B형간염 사실을 기재한 이력도 있으므로, 보험사가 병력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보험사 주장
피고 보험사는 허 씨가 30일 이상 투약 사실에 '예'라고 답했음에도 세부 사항(진단명·치료내용·치료병원·치료기간·재발경험·완치여부 등 구체적 사항)을 기재하지 않았고, 간경화증 진단을 받았음에도 10대 질병 항목에 '아니오'라고 표기한 것은 명백한 계약 전 알릴 의무 위반이므로 계약 해지 및 보험사 면책 주장은 정당하다고 맞섰습니다.
법원의 판단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5단독(문유석 판사, 이하 '법원')은 허 씨가 디비손해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밝혔습니다.1)
법원은 먼저 간경화증 고지 누락 주장에 대해, 허 씨가 2015년에 간경화증 코드를 받은 것은 의료보험 규정상 B형 간염 약제비 혜택을 받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 실제 병명은 만성 간질환이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10대 질병에 '아니오'라고 표기한 것은 고지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이어 법원은 세부 사항 미기재에 대해서도 가입자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허 씨가 '30일 이상 투약' 항목에 명확히 '예'라고 표시한 점, 허 씨가 2005년경 동일한 보험사와 계약을 체결할 당시 이미 B형 간염 사실을 기재하여 보험사가 이를 알고 있었던 점, 가입 시 제출한 진료기록에 간질환 진단명이 기재되어 있었던 점을 지적했습니다.
법원은 "허 씨가 세부적인 사항을 기재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고지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보험사로서는 중요한 사항인 투약 여부에 표기가 되어 있고 과거 이력을 통해 질환을 알고 있었으므로 쉽게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하지 않은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결국 상법 제651조에 따라 피고 보험사는 계약을 해지할 수 없으며, 허 씨에게 3,900만 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며 허 씨의 청구를 전부 인용했습니다.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 해설
이 사례는 진료 현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건강보험 급여 기준을 맞추기 위한 상향 진단(코드 부여)'과 청약서 기재 방식의 실무적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얽힌 매우 중요한 판결입니다.
실무상 유사 사례에서, 환자는 단순 만성 질환임에도 고가의 약제 처방에 대한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 의사가 더 무거운 질병 코드를 입력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 경우 보험사는 서류상의 질병 코드를 빌미로 보험소송을 유도하거나 지급을 거절하곤 합니다. 이 사례에서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실제 환자의 상태가 서류상 병명과 일치하는가'를 주치의의 진단서와 의료 감정을 통해 객관적으로 입증해 낸 부분입니다.
또한 소비자가 청약서의 포괄적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면, 세부 내용을 적지 않았더라도 1차적인 알릴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보험사는 가입 심사 단계에서 손해사정 역량을 발휘해 미비한 부분을 추가로 질문할 의무가 있습니다. 피보험자 본인이 제출한 과거 서류나 다른 보험계약 정보로 보험사가 이미 알 수 있었던 사실이라면, 보험사는 책임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분쟁 대응 방안으로, 가입자는 청약 단계에서 발급받은 진단서, 처방전, 사고경위 등을 꼼꼼히 보관해야 합니다. 만약 고지의무 위반으로 해지 통보를 받았다면, 즉각적으로 과거 보험 가입 내역, 제출했던 의무기록사본 등을 확보하여 보험사가 이미 해당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는지 분석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소송 단계에서는 질환과 보험사고 간의 인과관계 부존재 입증과 더불어 보험사의 중과실 여부를 강력하게 다투어야 합니다.
유사한 분쟁은 사실관계와 약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1) 디비손해보험이 항소를 제기했으나, 2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 항소부는 2020년 11월 10일 1심과 마찬가지로 허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항소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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