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급 없어도 법적 의무 생겼다면
운전자보험 변호사비용 보험금 인정
법원은 운전자보험 가입자(응 모 씨)가 현대해상화재보험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가입자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약관상 '실제로 부담한 금액'의 의미를 '현실적인 지출'이 아닌 '법률상 지급 의무'로 폭넓게 해석한 결과입니다. 이번 판결은 보험금 지급 실무와 약관 해석에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사건 개요
가입자 응 씨는 2021년 12월 피고 보험사(현대해상화재보험)와 피보험자 응 씨, 보장기간 20년으로 하는 '운전자 상해보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해당 상품에는 자동차사고벌금(대인) 2,000만 원 한도, 자동차사고 변호사선임비용 3,000만 원 한도, 자동차사고처리지원금 1억 5,000만 원 한도 등의 특약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응 씨는 2024년 6월 충남 서산시의 한 사거리 교차로에서 그랜저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적색 신호를 위반하여 직진하다가 신호에 따라 진입하던 74세 피해자의 오토바이를 충돌하는 사고를 냈습니다. 이 사고로 피해자는 전치 6주에 해당하는 외상성 경막하출혈 등의 중상을 입었습니다.
응 씨는 사고 다음 달인 2024년 7월 피해자에게 재산상 손해배상금의 일부로 형사합의금 2,000만 원을 지급하고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러나 신호위반 중과실 사고였기에 응 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상) 혐의로 정식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응 씨는 변호인을 선임하여 재판에 대응했고, 법원은 2025년 2월 응 씨에게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판결이 확정된 후 응 씨는 벌금을 납부하고 보험사에 합의금, 벌금, 변호사선임비용을 청구했으나 보험사는 변호사비 선지급 등을 문제 삼으며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주요 쟁점 정리
◗ '변호사선임비용으로 실제로 부담한 금액'의 법적 의미가 가입자가 현금으로 선지급 완료한 금액만을 뜻하는지 여부
◗ 형사재판 벌금 확정 후 실제 납부 증명이 있어야만 보험금 지급 의무가 발생하는지 여부
◗ 정식 소송위임계약서 없이 사후 작성된 확인서만 있는 경우, 약정된 변호사 보수액의 적정성 및 제한 범위
보험계약자 측 주장
가입자 응 씨는 자동차 운전 중 신호위반 사고로 타인에게 상해를 입혀 정식 기소되었고, 이에 따라 변호인을 선임하여 실제 공판 절차에서 법률적 조력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보험 약관상 가입자가 변호사에게 비용을 먼저 송금해야만 보험금을 준다는 명시적 조항이 없으므로, 변호사 선임으로 인해 법률상 보수 지급 채무를 지게 된 이상 보험사는 약관에 정해진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보험사 주장
피고 보험사는 특별약관에 기재된 '실제로 부담한 금액'이라는 문구의 뜻 그대로, 가입자가 자신의 자금으로 변호사에게 보수를 현실적으로 지급 완료한 금액만을 보상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더불어 응 씨가 변호사와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사후에 작성된 확인서만을 제출한 점을 들어 3,000만 원이라는 변호사 비용은 부당하게 과다 청구된 것이며, 벌금 역시 실제 납부 여부가 확실하게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94단독(조현준 판사, 이하 '법원')은 응 씨가 현대해상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밝혔습니다.1)
법원은 해당 운전자보험 약관 어디에도 피보험자가 먼저 변호사선임비용을 지출해야만 한다는 제한 조항이 없고, 보험금 청구 서류에도 변호사선임비용을 먼저 이체하거나 지급하였음을 증명하는 서류가 필수 조건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변호사선임비용으로 실제로 부담한 금액'은 가입자가 '실제로 법률상 지급의무를 부담한 금액'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습니다. 변호사가 변호인선임계를 제출하고 1회 공판기일에 출석해 실제 변론을 수행한 이상 응 씨에게는 변호사비 지급 채무가 유효하게 성립했다고 본 것입니다.
다만 법원은 응 씨가 청구한 변호사선임비용의 액수에 대해서는 제동을 걸었습니다.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변호사의 보수 약정이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형평의 관념에 반하여 부당하게 과다한 경우 적당한 범위로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은 변호사 선임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았고 착수금이 전혀 지급되지 않은 점, 해당 사건이 정형적인 교통사고 자백 사건이고 이미 기소 전에 형사합의가 완료되어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낮았던 점, 변호인이 1회 제출한 공판준비서면이 3페이지 분량에 불과하고 수사 단계나 합의 과정에 관여한 증거가 없는 점 등을 종합할 때 3,000만 원의 약정액은 보험금 지급 한도만을 고려한 과다한 금액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법원은 변호사선임비용의 인정 범위를 1,000만 원으로 감액 제한했습니다.
한편 보험사가 다툰 벌금 700만 원과 형사합의금 2,000만 원에 대해서는 재판 확정만으로도 지급 사유가 충족된다며 보험사의 면책 주장을 배척하고 전액을 지급하라고 판시했습니다.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 해설
이번 판결은 경제적 사정으로 당장 수천만 원에 달하는 변호사 비용을 직접 마련하기 어려운 보험소비자들에게 중요한 법률적 구제 기준을 제시해 줬습니다. 대다수 보험사는 약관의 '실제 부담'이라는 문구를 좁게 해석하여 선지급 영수증을 요구하지만, 법원은 가입자가 지게 된 '법률상 채무' 자체를 실손보상의 대상으로 인정함으로써 소비자 보호의 폭을 넓혔습니다.
유사한 분쟁에서 소송의 승패를 가르는 판단 기준은 변호사 선임의 사실 관계와 제공된 법률 서비스의 실질적인 내용입니다. 보험소비자가 향후 이러한 분쟁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실무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
첫째, 구두 약정이나 사후 확인서에 의존하기보다 변호사 선임 초기 단계에서 정식 소송위임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해야 합니다. 둘째, 사건의 난이도에 맞는 적정한 보수액을 책정해야 합니다. 무조건 보험 가입 한도액에 맞춰 고액의 보수를 약정할 경우, 법원에 의해 과다 청구로 판정되어 일부 금액이 잘려 나갈 수 있습니다. 셋째, 변호사가 실제로 수행한 업무를 증명할 수 있는 의견서, 변론 서면, 공판 조서 등의 객관적 자료를 철저히 수집해 두는 방법이 분쟁을 해결하는 유용한 수단이 됩니다. 보험사가 약관 해석을 이유로 지급을 거부할 때는 이러한 증빙 자료를 바탕으로 법률상 채무 성립을 명확히 주장하여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합니다.
유사한 분쟁은 사실관계와 약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1) 서울중앙지방법원 2026. 6. 19. 선고 2025가단75346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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