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공제 논리,
대법원이 뒤집은 이유
최근 대법원은 보험사가 약관의 모호한 공제 조항을 내세워 별도의 인보험 수령액을 빼고 자동차상해 보험금을 지급하려 한 사건에서 보험계약자 측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입한 정액형 상해보험금은 자동차보험 약관에서 말하는 공제 대상에 해당하지 않으며, 약관이 불명확할 때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자동차상해 보험금 산정 시 손해액 공제 기준과 약관 해석의 원칙을 명확히 한 사례로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와 함께 이번 사건의 전개 과정과 법원의 판단 이유, 그리고 실무적인 대응 방법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사건 개요
사고 차량의 소유자인 계 모 씨는 2019년 10월 케이비손해보험(피고 보험사)와 자동차상해 특별약관을 포함하는 자동차보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약관에 따르면 사망 1억 원, 부상 3천만 원, 후유장애 1억 원 한도 내에서 실제 손해액을 보상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계 씨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 황 모 씨(원고)는 2020년 3월경 새벽에 술에 취한 상태로 이 차량을 운전하다 편도 1차로 굽은 도로에서 중앙선을 침범해 반대편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 진행 차선으로 돌아와 우측 옹벽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습니다. 이 사고로 황 씨는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머리와 어깨에 심각한 상해를 입는 중상을 당했습니다. 이에 피고 보험사는 황 씨에게 부상 보험금 약 2,824만 원과 후유장애 보험금 1,000만 원을 우선 지급했습니다.
한편 황 씨는 이 사고와 관련하여 본인이 별도로 가입해 둔 다른 보험사의 인보험 계약에 따라 7,200만 원의 정액 후유장애 보험금을 수령했습니다. 이후 황 씨는 피고 보험사를 상대로 자동차상해 특약에 따른 나머지 부상 보험금 및 후유장애 보험금 약 8,37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문제가 된 것은 자동차상해 약관 제2조 제2항 제3호 라목의 공제 조항으로, '배상의무자가 아닌 제3자가 부담할 금액으로 피보험자가 이미 지급받은 금액'을 공제하도록 명시하고 있었습니다.
쟁점 정리
◗ 개인적으로 가입한 정액형 상해보험(인보험)에서 수령한 보험금이 자동차상해 특약의 공제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
◗ 자동차상해 약관상 '제3자가 부담할 금액'의 해석 범위 및 평균적 고객의 이해 가능성
◗ 보험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않을 때 적용되는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고객에게 유리한 해석)'의 적용 여부
보험계약자 측 주장
원고 황 씨 측은 별도로 가입한 상해보험에서 받은 7,200만 원은 사고 발생 시 정해진 금액을 주는 정액 보험금일 뿐, 자동차상해 특약에서 정한 '배상의무자 이외의 제3자로부터 보상받은 금액'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자동차상해 후유장애 보험금을 산정할 때 해당 금액을 공제하는 것은 부당하며, 약관에 따른 나머지 보험금을 전액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보험사 주장
피고 보험사는 자동차상해 특약이 피보험자가 입은 실제 손해액만을 보상하는 성격이므로, 손해의 이중 전보를 막기 위해 약관에 공제 조항을 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따라서 황 씨가 다른 상해보험에서 이미 수령한 7,200만 원은 약관에 규정된 '배상의무자가 아닌 제3자가 부담할 금액으로 이미 지급받은 금액'에 명백히 해당하므로, 이를 공제하면 추가로 지급할 후유장애 보험금은 남아 있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1심과 항소심은 피고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원고(황 씨)가 다른 인보험 계약에 따라 받은 7,200만 원이 약관상 공제 대상에 해당한다고 보고, 산정된 후유장애 손해액에서 이를 공제하면 피고 보험사가 추가로 지급할 금액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 제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원심 판결의 원고 패소 부분 중 후유장애보험금에 관한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1)
재판부는 자동차상해 보험의 공제 조항 목적이 손해의 이중 전보를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원고가 별도로 가입한 보험은 실제 손해와 관계없이 약정한 금액을 지급하는 '정액보상적 성격의 인보험'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평균적인 고객의 시각에서 볼 때, 자신이 개인적으로 가입한 상해보험금을 약관상 공제 대상인 '제3자가 부담할 금액'이라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별도의 인보험 수령액이 공제 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명백하지 않으므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5조 제2항에 따라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을 적용하여 고객인 원고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임용수 보험전문변호사 해설
보험회사가 약관의 모호한 문구를 넓게 해석하여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삭감하거나 면책을 주장하는 유사 사례는 실무상 매우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특히 상해나 질병으로 인한 다중 보험계약 상태에서 중복보상 여부를 두고 벌어지는 분쟁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유사 사건에서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수령한 타 보험금의 법적 성격(실손보상인지 정액보상인지)과 해당 약관 조항이 평균적인 고객의 시각에서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우리 법원은 약관이 객관적으로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면 반드시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을 엄격하게 고수하고 있습니다.
보험소송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가입한 모든 보험의 약관 주요 내용과 청약서, 진단서, 수술기록지, 사고경위서 등을 꼼꼼히 확보해야 합니다. 타 보험사에서 받은 보험금의 지급결의서나 손해사정 보고서를 통해 해당 금액이 '실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는 성격이 아니라 '정해진 사고 발생 시 지급되는 정액금'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분쟁 대응 방법과 단계별 팁을 조언하자면, 보험금 청구 초기 단계부터 보험사의 공제 계산 방식을 무조건 수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험사가 특정 조항을 근거로 보험금 삭감을 통보한다면, 즉시 보험전문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약관 해석의 적정성을 따져야 합니다. 소송 단계에서는 손해의 성격 분리와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을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가장 유리한 해결 방안이 됩니다.
유사한 분쟁은 사실관계와 약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1) 대법원 2026. 1. 15. 선고 2025다213683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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